히가니노 게이고의 <비정근> 옮긴이의 글

 
  ‘나’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정교사들이 출산이나 병가 등의 이유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때 출동하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죠. 사실 추리소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 ‘나’는 교육문제는 물론이요, 아이들한테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대할 때 필요최소한의 관심만 보이며 마음에 자리를 내주지 않고 다만 정해진 기간 동안 책잡히는 일 없이 무난히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디까지나 먹고 살기 위해 교사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이라 그런가, 어떻게 된 게 부임하는 학교마다 바람 잘 날 없이 사건사고가 납니다.
<6 span="">  이치몬지 초등학교에서는 동료 여교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더불어 학생들의 왕따 현장까지 목격하게 됩니다.
<1>  니카이도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학생들이 괴이할 정도로 얌전하고 조용한 미쓰바 초등학교에서는 출근 첫날부터 형사가 따라붙어 전 담임교사의 자살사건에 석연찮은 점이 있다며 도와줄 것을 부탁합니다.
   <우라콘>: 모범생들만 한 반에 모아놓은 듯한 시키 초등학교에서는 여학생의 자살 미수 사건이 터지죠.
   <무토타토>: 운동회와 수학여행을 앞둔 고린 초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편지가 날아들고,
  <신의 물>: 롯카쿠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독극물이 든 물을 마시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주인공 ‘나’는 의도치 않게 터지는 각 사건들을 구시렁대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풀어나가는데, 각 장의 마지막마다 아이들을 향해 무심한 듯 내뱉는 말이 은근히 멋집니다. 본인은 비정한 척, 인정머리 없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게 정말 ‘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히가시노 게이고가 학창 시절 교사를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인 ‘나’처럼 쓸데없는 참견은 배제하고 인간 대 인간의 동등한 시선에서 쿨하게 할 말만 해 주는 교사를 원했던 건가 싶기도 하네요. 짧은 단편들이지만 각 장마다 묘사되는 초등학생들의 심리와 행태가 인상 깊습니다. 각 장의 초등학교 이름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방화범을 찾아라>와 <유령이 건 전화>는 국어시험 빵점에 빛나고 매사에 덤벙대서 툭 하면 담임교사의 눈빛 레이저 세례를 받는 고바야시 류타가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는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아예 탐정 지망생인지 쭐레쭐레 쏘다니며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하는 엉뚱하고 귀여운 친구죠. <유령이 건 전화>의 결말부에서는 가슴이 조금 찡해지기도 합니다.

   바람처럼 홀연히 흘러들어와 사건을 해결하고 쿨하게 떠나는 주인공 ‘나’와, 발칙하고 귀여운 고바야시 류타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댓글

  1. 학교에서 전인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전국 일타 강사에게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좋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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